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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몸의 회복이 얼추 끝났다.
모든 마력을 재생으로 돌린 덕에 적어도 외상만은 깔끔히 나았다.
다만 조금 문제가 있는데….
바로 지금껏 <폭식>에 저장해 놓았던 에너지를 모두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딱히 에너지를 모은답시고 열심히 먹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거의 1년 가까이 저장만 했던 에너지를 한 번에 다 소모했으니 다시 한번 샤를로트가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강한 상대를 내가 이겼고 말이지.’ 괜스레 자긍심이 차오른다.
샤를로트가 말했던 것처럼 앞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부족한 에너지인데….’ 그동안 그리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막상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가 텅텅 비고 보니 몸을 유지하는 열량(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
‘오른쪽이가 왜 항상 배고프다고 한지 알 것 같군.’ 역시 덩치가 덩치다 보니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동안 사냥에 열중했다.
사막 구역과 산림 구역을 오가며 몬스터, 헌터 가리지 않고 보이는 족족, 기척이 느껴지는 족족 사냥했다.
하루 만에 내가 사냥한 숫자가 백을 훌쩍 넘기니 한동안 미궁에서 다른 생물들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많은 숫자를 잡아먹었음에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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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진가….’ 막 한 실시간파워볼 무리의 헌터들을 사냥했을 때 불현듯 느꼈다.
‘이 이상 사냥했다간 문제가 있다.’ 아무리 헌터보다 몬스터 위주로 사냥했다고 쳐도, 이렇게 단기간 만에 헌터들이 훌쩍 사라져서야 괜한 주의를 끌 뿐이다.
애초에 지금도 조금 간당간당하다 싶은데, 이 이상 헌터들을 건드렸다간 협회에서 무언가 낌새를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소란스러울 텐데.’ 파워볼사이트 샤를로트의 유언 덕에 당장 에이미나 다른 라비앙로즈의 길드원들은 이번 일을 함구할지라도, 이미 알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협회나 정부 쪽이 상당히 바쁠 것이란 것도 예상할 수 있었는데, 만약 이 와중에 내 이야기까지 그들에게 전해진다면?
‘…십중팔구 파워볼게임 대규모 토벌대를 보내오겠지.’ 소란스러우면 더 소란스러운 만큼 이런 문제를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샤를로트의 죽음과 내 관련성을 눈치챌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런 점을 생각하면 아무리 배가 고팠어도 헌터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한 것은 역시 악수였다.
그렇기에 조금 자제할 필요가 있었는데….
[배─고─파….] ‘…그래. 우리가 자제할 수 있을 리 없지.’ 그래도 이제부터라도 헌터를 죽이는 건 확실히 참을 필요가 있었다.
“꺄아악─!!” “처, 처음 보는 몬스터! 변이종인가?! 못해도 A랭크 이상…!” “도, 도망쳐─!!!” “협회에 신고해! 변이종이다…!” 은신해야 했단 걸 깜빡해 버렸다.
어쩔 수 없다. 엔트리파워볼
이번이 진짜 마지막인 걸로. EOS파워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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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트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싸움이 끝나면 곧장 자신을 찾아오라 리사가 말했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바깥이 소란스러운 만큼 그녀 쪽도 상당히 바쁠 테지만 거기까지는 내 알 바 아니었고.
무엇보다 에너지 하나가 아쉬운 마당에 괜히 인화의 술을 써가며 그녀를 만나러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오랜만에 본래 몸으로 생활하니 상당한 해방감을 느끼는 중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슬슬 돌아가도 좋을 것 같다.
설이와 스노우.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말이다.
물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잠깐 들릴 곳이 있었다.
18계층. 리자드맨의 부락을 방문했다.
일찌감치 기세를 내뿜으며 느긋하게 움직이니 현명한 비늘이 미리 마중 나와 있었다.
[저번에 귀띔했던 이야기에 결정은 했나?] [우리 결정했다. 닉스를 따라간다.] 마음을 굳힌 듯 당당히 말하는 현명한 비늘의 모습에 조용히 뒤편의 다른 리자드맨들을 살폈다.
세 리자드맨 대전사들을 필두로 마중 나온 모든 리자드맨들이 굳게 고개를 끄덕인다.
확고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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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의 첫 시작은 일전에 설이의 친구를 구하려 했을 때로 돌아간다.
결국 지금은 토순이라는 훌륭한 장난감이 생기기는 했지만, 토순이와 만나기 전까지 설이의 부하 후보로 가장 유력했던 건 바로 리자드맨들이었다.
당시에는 거리 문제나 다른 이런저런 문제들로 포기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래도 본인들의 동의 없이 함부로 데려갈 생각은 없었기에 일전의 마지막 방문 때 슬쩍 고민해 보라 이야기를 꺼냈는데, 다행히 모두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렇군. 떠날 이들은? 이게 전부인가?] [부족 전체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나머지는 짐을 꾸리고 있다.] […빠르군.] 재빠른 리자드맨들의 행동에 한차례 고개를 주억이면서 슬쩍 그 숫자를 살폈다.
[…30이 좀 넘나? 확실히 예전에 비해 많이 줄긴 했군.] 2년여 전 떠나던 당시에 그 숫자가 7, 80 정도 되었으니 두 배 넘게 줄어든 셈이었다.
새삼 리자드맨들이 그간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짐을 다 챙긴 리자드맨들과 부락을 떠났다.
인원이 인원인 만큼 눈에 띌 수밖에 없었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당분간 미궁 밖으로 나갈 계획도 없고, 이번에 상층을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소란이 일어난다 해도 이후 내가 다시 상층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다 가라앉아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니 굳이 헌터들을 잡아먹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른쪽이가 굉장히 기뻐했다.
당초 계획은 곧장 18계층을 떠나 빠르게 산림 구역을 벗어날 생각이었지만, 예정이 조금 달라졌다.
부락을 막 떠났을 시점에 리자드맨들이 간절히 부탁했기 때문이다.
늑대들에게 혼쭐을 내주고 싶다고.

그동안 당한 게 많기는 많았던 모양이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허락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리자드맨들 만으로 조금 버거울 것 같았기에 나도 조금 손을 거들었다.
인간 상태가 아니라 본신이었기에 거들어 줄 손은 없었지만.
왼쪽이가 신이 나서 학살을 자행했다.
이날 18계층 늑대들의 씨가 말랐다.
그러게 평소에 잘 좀 할 것이지.
이게 다 녀석들의 업보다.
떠나가는 길, 잊지 않고 깜짝 새의 알을 챙겼다.
그동안 많은 알들을 먹어왔지만 이만한 별미가 또 없다.
반드시 설이와 스노우에게 먹여주고 싶었다.
리자드맨들에게 부탁해 가능한 많은 알들을 챙겼다.
당연하게도 깜짝 새들이 미친 듯 날뛰기 시작했으나 늑대들이 당한 꼴을 확인하고는 얌전해졌다.
몇몇은 자진해서 자기 알을 바치기도 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는데….
그렇게까지 공손하니까 오히려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너희들, 알을 목숨처럼 아끼는 거 아니였나…?
알 따위는 다시 낳으면 그만이라고?
그건 또 그렇긴 하지만….

여러모로 개운치 않기는 했지만 받을 건 다 받았다.
리자드맨들이 아니었다면 옮기기 힘들었을 양이다.
[그런데 닉스.] [왜 그러나, 현명한 비늘?] [가는 도중 알이 썩거나 하면 어쩌나?] […….]
급하게 되돌아가 깜짝 새 부부 두 쌍 정도를 챙겼다.
아까 자진해서 알을 바친 그 녀석들이다.
아니,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서 너희들을 먹으려는 게 아니라….
단지 무한리필집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리 울지 마라.
알만 잘 낳아준다면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줄 테니까.
그렇게 정확히 34마리의 리자드맨들과 두 쌍의 깜짝 새 부부와 함께 18계층을 떠났다.
중간에 우리를 보고 기겁하는 헌터들이 여럿 있었지만 딱히 협회에 신고는 못 할 거다.
오른쪽이가 열심히 일했거든.
나를 포함해 39마리나 되는 몬스터들 이끌고 열심히 계층을 내려갔다.
헌터로 치면 중형 공격대에 해당하는 숫자다.
평야 구역 같은 집단전이 생활화된 곳이면 몰라도, 이런 상층에서야 당연히 마주치는 몬스터건 헌터건 기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 보이는 족족 사냥해 배를 채웠지만, 그것도 내려가면서 횟수가 점점 많아지니 이내 그냥 보내주게 되었다.
오른쪽이가 슬슬 배가 부른 기색이었다.
많이도 먹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계층을 내려가, 해가 저물 때쯤 28층 사막 구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꽤 커다란 문제를 마주해 버렸다.
[니, 닉스…! 추, 춥다아!] “즈…! 즈아아─!!” 리자드맨들이 단체로 추위에 벌벌 떨었다.
그래, 리자드맨도 따지고 보면 파충류.
녀석들 역시 틀림없는 변온 동물이었다.
급히 마법으로 불을 피웠다.
덜덜 떨던 리자드맨들이 그제야 살 것 같은 얼굴을 해 보였다.
조금 미안하다.
[저, 저기… 저희도 조금 추운데….] […너희는 깃털이 있지 않나?] […그, 그게 그것이….] 어쩔 수 없이 깜짝 새들을 위한 불도 피워주었다.
[저, 저기…! 부, 불이 너무 가까운뎁쇼?!] [아, 실수다. 미안하다. 치킨이 먹고 싶어지는 바람에 그만 무심코….] 깜짝 새들이 열렬히 날개를 퍼덕인다.
아니, 정말 실수라니까.
불 마법은 오른쪽이가 사용하니 사심이 조금 들어간 것뿐이다.
그것보다 걱정이다.
당장에야 내가 불이나 얼음을 만들어주면 괜찮겠지만, 최종 목적지인 설산 구역은 이곳에 몇십 배는 더 추운 혹한의 땅.
그전에 거쳐 가야 할 평야 구역이나 용암 구역도 굳이 말할 필요 없다.

‘깜짝 새들은 둘째 치고, 리자드맨들이 과연 적응할 수 있을지….’ 내성 스킬이라도 생긴다면 좋겠지만 내가 아닌 다른 몬스터들의 경우 스킬이 새로 생기는 경우가 무척 드물다.
과연 리자드맨들 전원이 내성 스킬을 가질 수 있을지 없을지는 굉장히 불투명했다.
‘되도록 천천히 움직여야겠군.’ 일단 천천히 기후에 적응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후 가야 할 다른 구역들을 생각하면 이곳 사막 구역은 훌륭한 적응 훈련장이 되어줄 것이다.
‘거기다 이번 기회에 랭크도 높일 수 있도록 해야겠어.’ 현명한 비늘은 C랭크, 다른 세 마리의 대전사들은 D랭크.
랭크적으로 봤을 때는 설산 구역에서 어찌어찌 생활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랭크였지만, 그래도 이후의 본격적인 생활을 생각하면 조금 더 성장할 필요가 있었다.
거기다가 저 넷을 제외한 다른 리자드맨들은 모두 E랭크였으니 확실히 성장할 필요가 있다.
다들 겨우 토순이급에 불과했으니까.
문득 이렇게 보니 토순이가 의외로 강하다 싶었다.
리자드맨이나 깜짝 새와 동급이었으니까.
과연 하층의 몬스터라는 것일까?
평소 설이한테 당하던 걸 떠올리면 전혀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말이다.
그렇게 리자드맨들의 적응을 위해 적당히 이동 속도를 조절했다.
낮이 되면 얼음 마법을 사용하고 밤이면 불 마법을 사용했다.

이동 도중 만나는 몬스터들도 되도록 리자드맨들이 상대하게 함으로써 리자드맨들의 성장을 도왔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는 안 보였지만 현명한 비늘을 시작으로 세 대전사들이 하나둘 내성 스킬을 배우기 시작했다.
상당히 뿌듯하다.
그런데 현명한 비늘과 대전사들은 왜 우는 것일까?
혹시 왼쪽이가 괴롭혔니?
아니면 오른쪽이가 배고프다고 입맛을 다시든?
어느 쪽이든 말해라, 내가 당장 혼쭐을….
아니었다.
녀석들은 단지 내 하드한 트레이닝이 괴로웠던 모양이다.
그 지옥 같은 훈련 끝에 마침내 내성 스킬을 배워서 울컥하고 차오른 것이라고.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딱 적당한 상대도 찾아서 데려와줘, 죽을 거 같으면 제때 힐도 써줘.
전혀 부족할 게 없는 것 같은데….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과해서 문제란다.
아니. 나 때는 말이야,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버티고 그랬어.
뭐? 휴식 시간?
그런 게 어딨어?
어휴… 나 때는 말이야….
격한 반응에 결국 조금 일정을 조정했다.
다른 리자드맨들을 포함, 깜짝 새들이 현명한 비늘과 세 대전사들을 열렬히 찬양했다.
그렇게 힘들었나…?
눈물까지 글썽이며 찬양하는 리자드맨들의 모습에 조금 미안해졌다.
확실히 반성한다.
이런 느낌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계층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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