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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로나 드 네로(2)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살육의 밤.
그날은 유달리 거친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날이었어요.
가주이신 테오 님께서 파이몬의 처단을 위해 자리를 비우셨고, 마님과 아직 어렸던 녹스 도련님. 그리고 전 가문에 남았죠.
다른 사람은 대부분 테오 님을 따라 악마 처치를 위해 나서셨어요. 도련님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으셨죠.
특히 첫째였던 가렌 도련님은 이미 가주 님을 보필할 실력이 되셨기에, 당연히 악마 토벌에 참여하셨어요.
그라인 님은 아카데미의 수업을 받고 계셨기에.
쌍둥이 도련님들은 프실라 님과 자리를 비우셨지만…….
어쨌거나 모름지기 리인하버 가의 이름을 가진 자라면 모두 악마와의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는 거죠.
하지만 저희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악마라는 족속들은 생각보다 더 저열하고 더러운 족속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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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실시간파워볼 소리가 들려오면, 우선 폭풍우를 의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이 어떤 곳인가요? 무려 리인하버 가문이잖아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리 하나하나를 세공하는데도 엄청난 마력이 요구되고. 아주 뛰어난 세공사가 작업했기에 자연스러운 물리력으로는 부서지지 않아요.
그렇다는 사실은…… 저희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말았죠.
보호 마법이 몇 겹은 파워볼사이트 둘린 창을 부수며 누군가 저택 내부로 잠입했다는 뜻이 되어버리고 마니까요. 그러니 두려울 수밖에요.
찰박. 찰박. 파워볼게임
이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복도를 거니는 찰박거리는 거구를 지닌 악마의 발소리가 들려왔어요.
마님과 도련님, 엔트리파워볼 그리고 저는 작은 하인의 방에서 숨을 죽이며 쉬고 있었죠. 그도 그럴 게, 큰 방에서 쉬기에는 너무 발각의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거 아세요?
악마는 인간의 피 냄새를 맡는다는 것을.
도련님은 저와 함께 도망치시다 발에 걸려 바짓단이 약간 찢어졌고, 그 과정에서 협탁에 긁혀 피가 나고 있었어요. 또한, 악마는 이를 놓치지 않았죠.
녀석은 우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오며 말했어요.
[인간의 피 냄새가 나는군. 숨어 있다고 해서 내가 모를 줄 아는가?] 대공급은 아니었어요.
그 아랫급조차 되지 않았겠죠.
하지만 저희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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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바깥의 수많은 임시 병력 및 가신들이 다른 악마에 짓이겨지며 들려오는 비명을 들어버렸거든요. 숨을 헉하고 참아봐도 소용없었어요.
녀석은 저희를 향해 아주 조금씩, 천천히 접근해 오고 있었어요.
마치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먹기 위해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말이에요.
“당장 그만둬. 여기서 너희가 원하는 것은 내 목숨 하나일 텐데? 의미 없는 살생은 이제 관두는 게 어때?”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다름 아닌 마님이었어요. 마님의 몸 전체로부터 따스하고도 성스러운 빛이 뿜어졌고, 이내 사악한 악마를 집어삼키셨죠.
하지만 악마는 조소하며 전혀 물러서지 않았어요.
[그까짓 빛으로 우리를 몰아낼 수 있다 생각하는가? 티끌 같은 나약함일 뿐이다. 거기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너 하나가 아니다.] 말의 뜻은 명확했어요. 악마의 시선은 오직 한 구간에 정확히 머물렀거든요.
도련님, 그가 원하는 것은 녹스 도련님이었어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련님을 그들은 죽이려 들고 있었고. 어느새 창밖으로부터 수많은 어둠 속 붉은 눈동자가 차갑게 몸 곳곳을 훑어내리기 시작했죠.
“로나.”
마님이 저를 부르신 것은 그때였어요.
두 눈을 마주치며, 여느 때보다 더 선명하게.
또 따뜻하게 웃어주시는 그 동공을 보며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는 사실을, 도련님이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저는 얼어붙은 채 마님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그저 듣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답니다.
“녹스를 부탁해. 그 애는 너무 큰 힘을 타고났어. 그러니 네 도움이 필요해… 녹스의 기억은 지워질 거야.” “…네?”
소리 내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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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은 이해한다는 듯 성호를 그리며 이어주셨죠.
“기억을 잃은 녹스가 조금은 네가 아는 사람과 달라지더라도… 녹스를 보살펴줄 수 있겠니? 다른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주목받지 않고, 다시 언젠가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화악, 하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요.
그저 찬란한 빛이 점멸했고, 순간 어둠을 먼 발코니 밖으로 밀어냈다는 것. 그리고 어느덧 눈을 뜬 제 곁엔 아직 어린 도련님이, 그리고 창밖으론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죠.
저는 깨달았어요.
마님이 도련님과 저를 위해, 악마를 쓰러뜨리시고 돌아가신 거라고…….
“이렇게 울고만 있어선 안 돼. 정신 차려야 해. 마님의 마지막 이야기를 헛되게 할 순 없어.” 눈물이 났지만 저는 어찌할 도리 없이 겨우 참아내는 데 급급했어요. 도련님을 지켜야 했으니까. 그게 마님과의 마지막 약속이었으니까요.
이후 저는 도련님이 주목받지 않는 선에서 계속해 도련님이 가주 쟁탈전을 비롯한 모든 가신들의 눈 밖에서 맴돌도록 했어요.
악의적인 소문이라 생각하셔도, 저를 벌하신다 해도 달게 받으려 했는데. 도련님은 너무나 따뜻한 사람이어서. 그래서, 제게 아무런 벌도 주지 않으셨죠.
그저 슬픔에 견디지 못해, 차가운 유리잔으로 제 손목을 베려던 것을 제가 겨우 붙잡았을 뿐. 저는 그때 이미 짐작했는지도 몰라요.
도련님이 이미 그 악몽에서 깨어났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계실 거라는 것을…….

다음은 설명할 것도 없었어요.
저희는 살아남기는 했지만 막대한 마력에 짓눌려 아무것도 보지 못했죠.
깨어났을 때 이미 도련님은 기억을 잃은 뒤였어요. 이후 제게 그 비극적인 광경을 잊어버렸다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아세요?
도련님은 당시에도 겉은 차가웠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걸요.
때문에 저는 생각했어요. 도련님이 사실 그날의 일을 기억하시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제게 유달리 모질게 구시는 것은 아닐까.
그날 자신이 피를 흘리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마님께서 살아 계실지도 모르는 일 아닐까 하는 악몽 속에서 살고 계신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실제로 도련님은 매일같이 악몽을 꾸셨죠.
저는 도련님이 아프지 않길 바라요.
때문에 항상 제 곁에서 지켜보길 바랐죠.

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모든 것을 기억하고 계신다면, 상냥한 도련님의 곁에 제가 있을 수 없게 되니까. 어린 도련님을 기만하고 진실을 숨긴 제가 도련님을 계속해 비참한 과거에서 살게 해 버리고 말 테니까요.
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일이, 고통이, 마님의 숨결이 떠오르고 말 테니까요.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일지 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아요.
그러니…….
도련님은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세요.
제가 소문을 퍼뜨리고, 도련님이 망나니처럼 행동했을 때도.
결코 누군가에게 정말 미움받을 짓은 하지 않았으니까.
모든 일에는 이유가, 그래 이유가 있었던 거죠…….

로나 드 네로.
소모성 캐릭터라 여겼던 이의 이야기가 이제야 끝이 났다.
가볍게 그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살육의 밤.
당시 테오와 리인하버 가의 주요 병력은 악마 파이몬을 처치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의 편성 후 그들을 공격했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가문의 병력이 약화된 것은 당연지사.
이때를 노려 수십의 악마가 저택을 급습했다.
그리고 녹스의 어머니가 이 과정에서 희생되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녹스 본인이 흘린 피의 냄새를 맡고 추적당했기 때문.
녹스는 이후 충격에 빠져 망나니가 되었다… 뭐 그런 이야기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들었다.
로나가 두 동그란 눈을 끔뻑이며 뜬 채 나를 보았다.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도련님 곁에 더 있을 수 없을지도…….” “이미 지난 일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일이잖아요. 마님을 사랑하셨는데… 하루아침에 잊고 이를 기만한 저를 용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거잖아요. 저도 알아요. 도련님이 저를 미워한다는 것… 차라리 제가 대신 희생되었다면…….” “그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 더 설명하고 싶지 않으니 평소 모습으로 돌아오도록. 지트리도, 다른 녀석들도 말은 하지 않지만 너를 걱정하고 있으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이제 충분히 들었다.
하지만 실수가 있었다면 과거 녹스의 것이고, 그녀는 그저 그 사실을 충격에 빠질까 두려워 내게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거기에 그녀의 죄가 어디에 있는가?

더구나 그녀가 나에 대한 소문을 낸 것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꽤 재미있어하는 티가 나서 약간 불편하기는 했지만, 로나는 의외로 속이 깊었으니까.
그러니 이 문제는 여기서 끝.
이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자책도 여기서 끝나야 한다.
나는 로나를 보며 차분히 말했다.
“로나, 내가 너를 왜 미워하지 않는지 아나?” “모르…겠어요.”
“비극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누군가 곱씹기 때문이니까.” 그래서다.
나는 그렇게 덤덤히 덧붙인 뒤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알았다. 테오가 왜 검을 섞을 때 녹스의 어머니 이야기를 했는지.
테오도, 로나도 나름의 아픔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기에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하나,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나는 바깥의 세상에서 빙의한 이방인이다.
어디까지나 게임 속 설정이었다.
녹스라는 캐릭터가 흑화하게 된 계기로서 작용하는 서사.
이를 위해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했다.
그것이 아쉽게도 그의 어머니였을 뿐이다.

어쩐지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감정? 이는 게이머로서 단지 녹스가 처한 상황이 안타까워서 느끼는 것이지, 그것이 내 어머니를 잃은 것과 같은 고통 때문인가 묻는다면 결단코 아니다.
애초에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적도, 아예 본 적도 없는 나니까.
나는 그녀를 그리워할 자격조차 없다.
아마 그 감정은 녹스 폰 리인하버. 내가 빙의하기 전, 유약했던 그 아이에게 있겠지. 다른 누구도 아닌 그에게.
하지만 앞의 로나는 내 생각과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녀가 드물게 우물쭈물하며 서두를 열어온다.
“하지만…… 도련님.” 하, 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런 뒤 머리에 평소처럼 가볍게 딱밤을 놓아준 뒤 이었다.
“모를 것 같았나? 매일 밤 잔병치레로 고생하던 내가 걱정돼서 내 곁을 두 시간씩 지키고 갔던 것도, 항상 욕을 하면서도 가장 마지막에는 도련님이 그래도 아예 나쁜 사람은 아니다, 라고 덧붙이던 게 너였다는 것을.” 나는 과거에 로나와 녹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아마 앞으로도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듣는 것만으로 전달될 수 없는 깊디깊어진 어떤 감정이, 한 스푼의 장난처럼 섞여 있는 쓸쓸함이 둘 사이에 있음을.
감히 엑스트라 A. 이방인으로서 그저 관조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기만 할 뿐.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잘 안다.
지금껏 로나가 녹스라는 배역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고, 그에게 헌신했는지. 또 조금씩 마음을 열고 인정하기 시작했는지.
애처로운 두 눈에 달린 눈물이 로나의 치맛단을 조심스럽게 적셔나간다. 그 모습을 가만히 주시하며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려 했으나, 순간 손이 멎어버린다.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로나가 섬기고 따르고 있는 자는 내가 아니다.’ 나는 외부의 인물. 어디까지나 빙의해 녹스의 몸을 빼앗은 사람이다. 오히려 테오에게도, 앞의 로나에게도 나는 나쁘다 여겨질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삽시간에 머리를 채우며 빙의 후 처음으로, 내가 무언가 잘못한 건가 하는 생각까지 번져왔다.
지금 나는 눈앞의 작은 아이조차 진심을 담아 위로해줄 수 없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버리고 만다. 나는 진짜 녹스가 아니어서.
그렇게나 버리고 싶어 했던, 리인하버 가의 망나니 막내아들 녹스 폰 리인하버가 아니어서.
그 짧은 시간에 나는 통탄함을 느끼고 만다.
그래서 이게 옳은지, 내가 하는 일이 맞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때문에 손을 거두고, 낮은 목소리로 그저 허공을 가로젓는 손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나도 안다. 네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그러니 이제 좀 편해져. 나도 그게 더 편하니.” “…도련님.”
되는대로 지껄인 이야기처럼 들린다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눈앞의 그녀가 편해졌으면 한다는 사실만큼은 진실이다.
테오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했는지.
녹스가 얼마나 어머니를 의지했는지.

로나가 내게 가진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이방인인 주에게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녹스라는 캐릭터에 의지해왔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다.
녹스 폰 리인하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내 사고는 그에게로 향한다.
나는 묻고 싶다.
녹스,
너는 도대체 왜 악역이 되어야만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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